6.25 전쟁 당시,
필리핀은 미국과 영국에 이어서
세 번째로 많은 지상군을 한국에 파병한 나라로
7,420명의 젊은 군인들이
한국의 자유를 위해 함께 싸웠고,
그중 398명이 고귀한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조국으로 돌아간 참전용사들은
불안정한 정치 상황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평생 가난과 질병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고령이 된 참전용사들은
이제 생계조차 유지하기 힘듭니다.
후손들은 교육의 기회조차 빼앗긴 채
가난의 대물림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필리핀 참전용사분들의
희생과 헌신을 잊지 않으신
많은 후원자분의 따뜻한 정성과
KAI(한국항공우주산업(주)), 국가보훈부의 소중한 지원으로
참전용사분들과 후손들에게
깊은 사랑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따뜻한 하루는 한국전 참전 74주년을 기념하여
참전용사 기념탑에 방문하여 헌화식을 진행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해 주신
필리핀 참전용사분들에게 숭고한 마음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필리핀 참전용사 회관에서
후원 행사 및 오찬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행사에는 100여 명의 참전용사분들이 참여해,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이날, 참전용사 회관에는
아리랑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습니다.
귀에 스며들어
마음에 새겨 둔 아리랑을
참전용사분께서 불러주신 건데요.
한국전에 참전한 것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후원자분들을 향한 감사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아
저희의 마음도 뭉클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필리핀 참전용사 40분에게 후원금을,
참전용사 후손 40분께는 장학금을 전달했으며,
주거 환경이 열악한 3가정을 대상으로
집수리 지원을 진행해 드릴 수 있었습니다.
뜯어지고 부서진 천장과 벽이
언제 내려앉을지 몰라, 늘 두려움에 떨던
미망인 할머니의 집을 수리해 드렸습니다.
안전한 공간에서
할머니가 생활할 수 있게 되어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뻐했습니다.
참전용사 할아버지께서는 거동이 불편하셨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화장실 문턱이 높아
이동에 큰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허름했던 침실과 주방, 화장실을 수리하고
높았던 문턱을 개선해
깨끗하고 쾌적한 보금자리를 선물해 드릴 수 있어
너무나도 값지고 소중한 순간이었습니다.
여전히 낡은 집에서 노년의 삶을 살아가던
참전용사와 유가족분들은
“저희 필리핀 참전용사를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몸이 불편해서 집에 머물러 있을 때가 많은데,
주거 환경이 좋아져서 너무 기쁩니다.”라며
후원자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후원자님들의 뜨거운 사랑에 힘입어
따뜻한 하루는 추가 모금을 진행할 수 있었는데요.
따뜻한 하루는 한국전 참전용사협회로부터 추천받은
참전용사 8분과 후손 12명에게
후원금을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회관으로 찾아오신 어르신들은
태극기가 새겨진 모자를 쓴 채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셨습니다.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찾아와 줘서 너무 감사합니다.”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네요. 감사합니다”
눈시울을 붉히며
감사 인사를 건네는 참전용사분들의 모습에
가슴이 아려오는 듯했습니다.
후손들에게는 장학금을 전달하여,
참전용사분들의 가장 큰 바람이었던
후손들의 교육 지원에도 도움을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쁨 속에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저희를 맞아주셨던
퀘존시의 로하스 어르신께서
저희 방문을 불과 3일을 앞두고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필리핀 지부에서는 급히 장례식장을 찾아 조의를 표하였고,
저희는 생계비 대신 장례비로나마
뒤늦은 감사와 애도의 마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사랑으로
참전용사분들이 여생을
조금 더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후손들이 교육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하루는
참전용사분들의 희생을 기억하며,
그분들이 조금 더 편안한 여생을 보내실 수 있도록
앞으로도 함께 하겠습니다.
계속해서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