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 년 전 황폐했던 한국이 이룬 눈부신 발전이 놀랍습니다.
내가 지켜낸 나라가 자랑스러워요.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따뜻한하루

24일 오후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에티오피아 강뉴(Kagnew)부대 참전용사
시페로 비라투(89) 씨와 테레페 이그조(91) 씨가 부산 유엔기념공원을 찾았다.
‘강뉴’는 에티오피아어로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하다’ 혹은 ‘초전박살’이란 뜻으로
한국전쟁 당시 에티오피아가 한국에 파병한 부대를 가리킨다.
두 참전용사는 유엔기념공원을 방문해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전우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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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라투 씨는 한국전쟁 참전 당시 겨우 17세에 불과했었다며 자신의 과거를 회상했다.
“학교에 다니던 중에 군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군에 입대했습니다.
그리고 황실 근위대 훈련을 받은 뒤 한국전쟁에 참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2차 파병 당시 한국으로 향했다.
하지만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비라투 씨의 참전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국에서 만난 전우들은 제게 ‘어린이가 왜 전쟁터에 왔냐. 에티오피아에는 남자가 그렇게 없냐’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죠. 하지만 저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을 향해 ‘나는 이곳에 죽으러 왔다.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눈물까지 흘리며 소리쳤습니다.
결국에는 전우들과 함께 참전할 수 있었죠.”

 

한국전쟁에서 무전병으로 활약한 비라투 씨는 귀환 후 에티오피아의 한 교도소에서 일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뒤 한 교도소의 교도관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계속해서 일을 하다 보니 교도소의 총책임자까지 오르게 됐고,
지금은 은퇴 후 연금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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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조 씨는 군인이 되기 전 에티오피아의 시골에서 부모님과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그는 “시골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도에 있는 군 부대에 입대하기로 결심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황실 근위대로 복무하게 된 그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황제의 명을 받아 3차 파병 부대의 보병으로 한국으로 향했다.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다른 나라의 침략으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가 있다면
마땅히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유엔의 파병 요청을 받자, 황제는 최정예 부대인 황실 근위대를 파병했습니다.
저 역시 한국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전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다양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두 차례 더 전쟁을 겪기도 했다.
“에티오피아로 돌아온 뒤에는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청소년 수련관에서 교관으로 일하거나 시골에서 농사를 짓기도 했죠.
운전을 배워서 운전기사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작은 차와 버스, 트럭까지 다양한 차를 몰았습니다.
그러던 중 소말리아 내전이 일어나 운전병으로 참전했고, 이후 벌어진 에티오피아 내전에도 참전했죠.”
에티오피아 내전을 끝으로 평범한 삶으로 돌아온 이그조 씨는 운전기사로 일하다 최근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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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한국전쟁 당시와 완전히 달라진 모습에 놀랐다고 말했다.

 

이그조 씨는 “제가 처음 밟았던 한국 땅은 먼지만 날리는 황폐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찾은 한국은 높은 건물부터 꽃과 나무까지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한국의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이 기쁘고 여기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비라투 씨 역시 자랑스러운 표정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잘 사는 선진국은 많지만, 한국은 전쟁이라는 고난을 겪었음에도
70여 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나라입니다. 정말 기특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저희를 맞아주는 사람들도 너무 따뜻하고, 제 마음속에서는 한국이 1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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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을 향한 한국의 관심에 관해서도 감사를 표했다.

 

비라투 씨는 한국인들이 전하는 도움이 자신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가 사용하고 있는 침대를 비롯해 가구와 생필품의 상당수가 한국에서 챙겨주신 것들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꼭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그조 씨도 한국을 향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은퇴 후 연금을 받고 있는데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수준입니다.
한국인들이 식료품과 의약품을 보내주시는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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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이들은 유엔기념공원 내 상징 구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에티오피아 국기와 태극기 앞에 서서 묵념하는 시간을 가진 뒤,
전사자들의 묘비에 헌화하며 세상을 떠난 전우들의 넋을 위로했다.

 

한편 두 참전용사의 이번 한국 방문은 사단법인 ‘따뜻한 하루’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26일 가평 전투지, 28일 에티오피아 기념탑 등
오는 29일까지 한국전쟁과 관련된 장소를 방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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